제향ㆍ강학ㆍ관리 내실화

필암서원은 1년에 두 차례씩 사당인 우동사에서 제향을 지낸다. 춘향은 음력 2월 중정中丁, 추향은 음력 8월 중정이다. 춘·추향의 경우 초헌관은 필암서원의 위상에 걸맞게 전국 원로 유림, 장·차관 및 도지사, 대학 총장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향사를 마친 후 초헌관 특강이 이어지는 것도 오랜 전통이다. 아래는 2024년 춘향제를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이다.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에서 열린 춘향제
조선시대 성리학 대가 하서 김인후 선생(1510∼1560)을 기리는 춘향제(春享祭)가 24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사적 제242호)에서 열렸다. 이날 춘향제에는 김영근 성균관재단 이사장,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한종 장성군수, 김상엽 울산김씨 대종회장, 김상국 울산김씨 대종회 사무총장, 김상백 울산김씨 문정공 대종중 도유사, 최영성 간재학회 회장 등 유림과 주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초헌관을 맡은 김 이사장은 제를 마친 뒤 서원 내 청절당에서 ‘효와 진정표(陳情表)’를 주제로 강론했다. 진정표는 중국 진나라의 이밀이 황제에게 올린 상주문이다.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효행 명문으로 통한다. 김 이사장은 “진정표를 거론하는 것은 효치천하(孝治天下)를 강조하기 위해서다”라며 “상실되고 있는 효의 가치를 회복한다면 윤리와 도덕을 기반으로 한 전통문화가 살고 미래 또한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서는 퇴계 이황(1501∼1570)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 중기 유학자다. 154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부수찬이 돼 세자(인종)를 가르쳤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 장성으로 내려와 후학을 양성했다. 호남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고 있다. 필암서원은 호남 유림이 하서와 제자 고암 양자징(1523∼1594)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조선 선조 때 창건한 사우(祠宇)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한국의 서원 9곳 중 한 곳이다. (출처 : 2024.3.25자 동아일보 )
춘향 봉행 후 장성 관내 고3 재학생 30명에게 각 1백만 원의 장학금을 수여하고, 추향 봉행 후에는 하서 선생 추모 백일장 시상식을 갖는 것이 필암서원의 특징이다. 장학금은 수당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가 생전에 설립한 양영·수당 장학재단에서 매년 장성과 순창 지역 고교생을 선발하여 지원한다. 백일장은 초창기에 한시 백일장으로 시행하다가 현재는 한글 백일장으로 전환했다.
강학에 있어서 고정된 자체 프로그램으로는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선비학당이 있다. 10여 명의 수강생이 매주 화, 목요일에 2시간씩 명심보감, 사서삼경, 도학 사상에 관한 강의를 듣는다. 강의는 필암서원에 50년 가까이 몸담은 원로 유학자가 맡고, 장성군에서 약간의 강사료를 지원한다.
이 밖에도 장성향교가 국가유산청, 장성군, 성균관 등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고 있는 유교 아카데미 프로그램, 청렴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좌, 청소년 예절 및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손꼽을 수 있다. 서원 운영은 필암서원 학술회 산하에 27명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도유사, 부도유사, 총무유사 등 임원이 집행을 맡고 있다.

민관 차원의 지원과 협력
1945년 광복 이후 필암서원은 후학들과 하서 선생 및 고암 선생 후손들 주도로 서원 설립의 취지를 면면히 이어 오고 있다. 하서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대표적인 단체로는 사단법인 필암서원 산앙회山仰會와 하서학술재단, 동아꿈나무재단 등이 있다.
산앙회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호남의 유림이 ‘고산앙지高山仰止’의 뜻을 모아 결성한 산앙계山仰契가 모태이다. 이 단체는 70년이 넘게 맥을 이어오면서 향사 봉행 등 서원 운영에 물심양면으로 이바지하고 있다. 2001년 8월에는 전국 각지의 유림과 계원이 모여 기존 산앙계를 확대 개편한 산앙회山仰會로 재출발했다. 또 10년 후인 2011년 10월에는 산앙회를 사단법인으로 승격하는 설립 허가를 받아 현재까지 공익법인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산앙회는 하서 선생의 학문과 문학을 널리 알리고 그 정신을 계승 발전하기 위해 매년 사계의 권위 있는 학자를 초빙하여 학술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 연례적으로 봄, 가을에 한 차례씩 산앙회보山仰會報를 발간하여 유림을 비롯한 회원과 관련 기관·단체 종사자 등 2,500명에게 배포하고 있다. 산앙회보는 2018년 12월호(제31호)부터 “천명天命과 중화中和의 실현을 꿈꾼 하서 도학道學과 문학文學”으로 제호를 바꿨다. 2024년 4월 현재 제40호까지 발간했다.
하서학술재단은 하서 김인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하서의 사상과 문학을 연구하고 후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장학사업 등을 활발히 펼치고자 1986년 서울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하서기념회’로 명명됐던 재단은 1987년∼1988년에 하서선생기념사업회 명의로 ‘하서전집’ 3권을 국역 편찬했다. 2003년 ‘하서학술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대학교수와 연구기관에 연구비 지원, 학술행사 지원, 도서 발간 및 지원사업 등을 전개하여 사회 일반의 관심과 이해가 높아졌다. 재단은 그동안 하서 선생의 인물 됨됨이와 학문 세계를 소개하는 책자와 자료를 발간 보급했다. ≪하서 김인후의 사상과 문학≫(제1집~제4집) 발간, ≪전자판 하서전집≫ CD-ROM 편찬 후원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동아꿈나무재단은 1985년 동아일보사가 설립한 장학복지재단으로서 장학금 지급, 학술연구비 지원, 교육기관 지원, 신체장애자 지원, 청소년 선도 지원사업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특히 하서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필암서원을 활성화하는 사업에도 큰 관심으로 후원하고 있다. 하서 선생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 후원, 필암서원 운영사업비 지원, 필암서원산앙회 학술강연 개최 및 학술 소식지 발간비 지원 등을 해왔다. 최근에는 산앙회 홈페이지 구축과 필암서원 내 『하서문고』 개설 운영을 돕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공익법인 등에서도 그동안 하서 선생을 기리는 각종 문화 행사와 필암서원 운영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학술 포럼 등을 수시로 개최해 왔다. 2010년 하서 선생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가 서울과 장성에서 열렸고, 2018년 전라도 정도 1,000년 기념 하서 김인후 심포지엄 등이 장성에서 개최됐다. 2023년 필암서원 활성화 방안 학술포럼이 (사)지방활력연대 주관으로 열렸고. 2024년에는 전국단위 행사인 세계유산 등재 5주년 기념식이 (재)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통합관리센터 주관으로 필암서원에서 열렸다. 또 2024년 6월에는 (사)퇴계학진흥회와 (사)퇴계학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퇴계·하서 학술회의”가 서울에서 열려 뜻깊은 영·호남 유림 교류의 장이 됐다. 앞으로 장성과 안동을 오고 가며 현지에서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대외적으로 필암서원은 2013년부터 중국 악록서원과 교류협약을 맺고 두 서원의 제향 때 관계자 교환 방문 등 교류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악록서원嶽麓書院은 후난성에 있는 중국의 4대 서원 중 하나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현재까지 석사와 박사를 배출하는 등 천년학부千年學府 명성을 지닌 교육기관이다.
2019년 필암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유산청 등의 지원도 활발해지고 있다. 장성군의 경우 2021년부터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필암서원 선비문화 세계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원에 머물며 선비문화와 역사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서원 스테이를 추진하고 유물전시관을 종합기록관으로 확장해 전남의 서원 기록을 보존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지역의 관광명소와 축제 등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자연스럽게 서원에 들러 선비문화를 체험하고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새삼 느낄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장성군은 또 황룡면 맥호리 매실 마을에서 시작해 필암서원까지 이어지는 약 2㎞ 구간의 둘레길도 조성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가 문화유산을 보존 중심에서 가치를 확산·활용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여가문화의 확산과 삶의 질 향상으로 문화유산을 향유하려는 수요층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국민들의 문화유산 향유방식도 관람 중심에서 체험 중심으로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서원도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여 재창조하고, 대표적인 역사교육·향토문화의 거점으로 거듭나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서원의 융복합적 활용을 통한 사회·문화·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최근 수년간 국가유산청(종전의 문화재청)은 살아 숨 쉬는 향교·서원 만들기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동안 잠자고 있는 국가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문화콘텐츠를 새롭게 창조하여 살아 있는 역사교육장 및 프로그램형 국가유산관광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에 발맞추어 필암서원도 춘·추향제 1일 선비체험, 청백리교육 체험, 선비학당 및 유교 아카데미 운영 등 서원의 현대적 활용에 나서고 있다.




최근 수년간 국가유산청(종전의 문화재청)은 살아 숨 쉬는 향교 · 서원 만들기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문화재 문턱은 낮게’, ‘프로그램 품격은 높게’, ‘국민 행복은 크게’라는 전략으로 그동안 잠자고 있는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문화콘텐츠로 새롭게 창조하여 국민과 함께하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장 및 프로그램형 문화재관광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필암서원도 춘·추향제 1일 선비체험, 청백리교육 체험, 선비학당 운영 등을 통해 서원의 현대적 활용에 나서고 있다.

통합 관리에 들어간 ‘한국의 서원 ‘
세계유산등재 9개 서원의 목소리

2024.5.10.~5.11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5주년 기념행사가 장성 필암서원에서 열렸다. 그중에서 “세계유산 등재 이후 지속 가능한 서원의 역할과 기능”이란 주제로 개최된 학술 포럼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대표 서원 9곳의 실무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서원의 향후 발전 방안이 많이 들어있다.
*소수서원은 영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서 깊은 서원이다. 영주시 사업소로 소수서원 관리사무소(정원 12명)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나 시설 관리 전문 인력 추가 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서원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우리나라 원조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함양에 있으며 관 주도가 아닌 민간(사림) 주도로 건립한 서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다. 매년 3천만 원의 함양군 예산 지원도 넉넉한 편이다. 춘향제 때 가마 행렬 재현 행사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2023년에 지역문화 활력 촉진 사업에 2천 5백만 원, 서원 및 성균관 선비문화 활성화 사업에 2천 5백만 원의 국비를 각각 확보한 것은 다른 서원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다. 2017년부터 서원을 사단법인으로 운영하는 것도 모든 서원이 배워야 할 점이다.
*옥산서원은 천년고도 경주에 자리 잡고 있어 다른 서원에 비해 제향의 특성이 돋보이며, 문화관광 해설사 교육을 서원 자체적으로 실시해 수준 높은 해설이 되도록 힘쓰고 있다. 공공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재정 지원을 받아 유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지만, 관할 지자체인 경주시의 인력 및 예산 지원이 미흡하다는 반응이다.
*도산서원은 퇴계의 고향 안동을 지키는 서원답게 향사 참례를 희망하는 유생을 대상으로 전승 후계자 교육을 6개월간 실시한 후 집사 역할을 맡게 하는 점이 특징이다. 의례 인력 양성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예산은 도산서원 관리사무소에서 징수하는 서원 입장료 수입을 기반으로 연간 약 1억 원을 확보하여 집행한다. 특히 강학 시설인 선비문화수련원은 2023년 기준 누적 수련 인원 134만 명을 달성했고 2024년에도 2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연간 43억 원의 보조금을 국비와 지방비로 지원받고 있다.
*필암서원은 ‘문불여장성’을 상징하는 서원으로 사단법인 필암서원산앙회가 싱크 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앞에서 상술한 부분을 제외한 건의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유산청이 (가칭) “OO시·군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관리 운영에 관한 조례” 표준안을 작성하여 세계유산 등재 지자체로 보내주면 9곳 서원이 공동보조를 맞추어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글세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판 및 안내판에 대한 디지털화가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전산 능력을 보유한 문화관광 해설사를 서원에 상근 배치해 줄 것을 요망한다.
*도동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다. 연간 예산 2천 4백만 원 중 제향 비용으로 1천만 원을, 운영비와 세금 및 공공요금 등으로 1천 4백 만 원을 집행하고 있다. 제향 전승을 위해 젊은 사람의 향사 참여 유도가 요청되고, 서원에서 주고받은 각종 문서의 빠짐없는 보존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학에 있어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성균관 유교문화 활성화 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유교 아카데미, 문화관광 프로그램, 지역연계 인성교육 체험 학습을 실시했고, 2024년~2025년에도 성균관의 향교·서원 지원프로그램과 국가유산청의 세계유산활용 프로그램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남계서원 못지않게 도동서원의 국비 확보 노력도 높이 살 만하다. 도동서원은 또 ‘소학동자’로 일컬어지는 김굉필 선생을 배향한 서원답게 소학 강의와 성독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서원과 달리 운영위원회 결정 사항을 세부 집행할 수 있는 사무관리규정을 제정 시행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병산서원은 도산서원과 나란히 안동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시대의 서원 교육을 현대의 학교 교육(풍산중·고)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9곳 서원 중에서 후계 인력 양성이 가장 돋보이는 곳이다. 제향에 풍산 중·고 학생들을 엄선하여 참여토록 하고 있으며, 학생 수업시간에 지장이 없도록 향사 시작 시간도 여명黎明으로 변경했다. 병산 교육재단과 하회마을 보존회에서 예산 지원을 받아 연간 3천만 원을 향사 및 운영비로 충당한다. 강학은 인문학 강좌, 충효 정신교육, 만대루 시회詩會, 서원 선비체험 등 다채롭게 진행하고 있다. 충효 정신교육은 주로 병산서원에 주벽으로 모신 서애 류성룡 선생을 기리는 서애 이지스함 장병을 대상으로, 서원 선비체험은 풍산 중·고생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어 안정적인 강학이 이루어지고 있다. 병산서원은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관할 지자체인 안동시의 인력과 예산 지원이 미흡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원의 문루門樓 중 가장 긴 건축물로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병산서원 만대루도 건물이 기울어간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 대안으로 국가유산청에서 한국의 서원 9곳에 필요한 국비 예산을 확보하여 서원통합관리센터를 통하여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지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무성서원은 전북 정읍에 위치해 장성 필암서원과 인접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 지방 유림이 최치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생사당을 건립한 것이 출발점이다. 강학은 최치원과 정극인 등 배향 인물의 풍류와 도를 알아보는 강연과 공연이 실시되고 있다. 또 연간 20회에 걸친 서예와 정가正歌수업도 병행한다. 연간 예산은 정읍시의 보조금 1천 3백 만원과 헌성금獻誠金 등으로 충당하고 정읍시의 배려로 화재 안전 관리 요원과 청소 요원을 지원받고 있다.
* 마지막으로 돈암서원은 ‘예’의 고장 논산에 있다. 2019년 이전까지 제관들이 모두 벼슬아치가 입던 정복인 관복을 입었으나, 2019년 이후에는 관복과 흑단령黑團領을 착용한다. 또 어떤 연유로 사라진 것인지 모르는 찬창贊唱(의식의 순서를 적은 홀기笏記를 진행자가 순서에 따라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면 그 말을 그대로 받아서 큰 소리로 다시 외쳐 부르는 일)을 2022년 추향 때부터 복원했다. 강학은 예학의 산실답게 ‘돈암서원 예禮 힐링캠프’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까지 50여 회 실시한 돈암 만인소 운동이다. 원래 상소문은 “그렇게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라고 했지만, 돈암 만인소는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우리의 예절을 우리가 지키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바꾸었다. 그리고 이 상소문을 참가자가 직접 서약하고 수결하는 방식으로 확대하여 전국적인 도덕 운동으로 삼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6~7세 어린이가 참여하는 병아리 만인소,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참여하는 꿈길 만인소가 돋보인다. 외국인과 일반 단체 관람객들이 조선의 유생이 되어 우리 고유의 예절, 아름다운 우리 한글, 흥겨운 우리 소리를 배우고 즐기는 예미락禮美樂 프로그램도 돈암서원의 대표 브랜드이다. 강학과 출판에 중점을 둔 세계유산 활용사업 진행, 젊은 유림의 서원 유입, 제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지역민의 참여 등을 향후 발전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점은 다른 서원과 대동소이하다.

종합 및 결론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서원은 왕조시대에 성리학 교육을 위한 중등 사립 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서원이 유교 교육의 공간을 넘어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재조명받기 위해서는 유교와 관련된 프로그램만을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원은 당대 지식인들의 교육 공간이면서 동시에 고급문화를 선도했던 공론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서원 활성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서원의 본래적 성격에 착안하여 새로운 문화적 수요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재 많은 서원이 청소년들에게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충·효·예절교육’과 ‘한국 전통문화의 이해’와 관련한 내용으로 국한되어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통과 현재를 매개하거나 교차시킬 수 있는 파격적인 기획, 즉 유교의 음악과 미술, 서예와 다도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할 수 있다. 조선 선비들이 즐기던 시·서·화에 다도와 국악까지 융합한 기획도 가능할 것이다.
문화의 중심은 사람이다. 따라서 서원을 찾아오는 지역민과 외래 관람객의 만족도가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외국인 관광객의 눈높이도 고려해야 한다. 또 문화유산을 활용한 프로그램의 주요 성공 요인 중 하나는 홍보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한 집중적인 홍보가 물론 중요하다.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서원 문화유산을 좀 더 매력적인 자원으로 제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의 결과를 지역방송이나 지역신문을 통해 해당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장성 필암서원은 대도시인 광주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교육은 물론 회의, 공연, 숙박이 가능한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선비문화 세계화 사업이 완료되면 접근성과 편의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가 인근 서원에 비해 다소 미흡한 편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필암서원산앙회가 중심이 돼 세계유산에 손색없는 필암서원 특유의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를 선보여야 할 것이다.
하서 김인후 선생이 시인이자 철학자였고, 우국지사였다는 점에 착안하면 현대인이 선호하는 ‘서원 스테이’ 같은 힐링 프로그램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 선생이 남긴 ≪자연가≫를 활용하여 지역 창극단이 운영하는 국악 콘텐츠 발굴, 필암서원-백화정-통곡대-하서 묘소-신도비를 잇는 ‘하서의 길’ 걷기도 검토해 볼 만하다. 결론적으로 필암서원은 국가사적 지정이나 세계유산 등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서의 올곧은 삶의 자세를 본받아 실천하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현대판 선비의 요람이 돼야 한다.
